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꽤 오랫동안 외면했습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이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어딘가 무겁고 의무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어느 늦은 밤, 넷플릭스 추천 목록에서 또 마주쳤고, 그냥 틀었습니다. 두 시간 남짓 뒤, 저는 소파에 앉은 채로 한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짓누를 수 있다는 건, 직접 겪어보니 예상을 훨씬 넘는 일이었습니다.납치와 노예화 — 하루아침에 이름을 빼앗긴 남자영화는 솔로몬 노섭(Solomon Northup)이라는 실존 인물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합니다. 1841년, 뉴욕 사라토가에서 자유인 신분으로 살던 바이올리니스트 솔로몬은 공연 제안을 받아 워싱턴으로 향하던 중 약물에 취해 납치됩니다. 눈을 뜨니 쇠사슬에 묶인 채였고..
밀폐된 기내 공간에서 스카프 하나로 테러범을 제압하는 장면, 저는 이 영화를 보다가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습니다. 평범한 꽈배기 가게 아줌마인 줄 알았던 주인공이 국가정보원(NIS) 출신 요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영화는 완전히 다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한국형 코믹 액션을 찾다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틀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끝까지 눈을 떼기 어려웠습니다.기내 하이재킹, 어떻게 유쾌하게 풀었나항공기 납치를 소재로 한 영화, 즉 하이재킹(Hijacking) 장르는 본래 긴장감과 무게감이 생명입니다. 여기서 하이재킹이란 비행 중인 항공기를 무력으로 점거해 승무원과 승객을 인질로 삼는 범죄 행위를 의미합니다. 할리우드에서도 이 소재는 주로 스릴러나 액션 블록버스터의 영역이었죠. 그런데 은 이 ..
주말 저녁, 딱히 볼 것도 없이 넷플릭스를 뒤적이다가 고른 영화가 인생 영화가 되는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지 않으신지요. 제가 을 고른 것도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루소 형제 감독에 라이언 고슬링, 크리스 에반스라는 이름 세 개만 보고 바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인상을 받은 작품이었습니다.시에라 식스라는 존재 — 이름 없는 자의 무게영화는 코틀랜드 젠틀이라는 인물이 CIA 요원 도널드 피츠로이의 제안으로 '시에라 프로그램'에 합류하면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시에라 프로그램이란, CIA가 사형수나 극단적 범죄자들을 포섭해 비밀 작전에 투입하는 일종의 블랙 옵스(Black Ops) 조직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국가가 공식적으로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솔직히 저는 한국 영화가 우주 SF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2021년 넷플릭스로 공개된 영화 를 보고 나서 그 편견이 꽤 많이 흔들렸습니다. 디스토피아적(dystopian) 세계관 위에 한국적 정서를 얹은 이 작품은, 기대 이상의 시각적 완성도와 함께 아쉬움도 뚜렷하게 남겼습니다.우주 쓰레기 청소부들의 세계관, 직접 보니 달랐습니다제가 처음 를 틀었을 때, 화면에 등장한 건 광활한 우주가 아니라 지저분하고 고장 난 청소선 안이었습니다. 2092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환경 파괴로 황폐해진 지구를 버리고 UTS(United Terra Space)라는 우주 정거장으로 이주한 소수의 특권층과 그러지 못한 나머지 인류를 극명하게 갈라놓습니다. 여기서 UTS란 작중 민간 우주 기업..
황정민과 염정아, 두 배우가 한 화면에서 부부로 맞붙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저는 넷플릭스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전직 비밀 요원 출신 주부 남편과 광수대 에이스 형사 아내가 서로를 의심하면서도 결국 3조 5천억 규모의 군납 비리를 건드리게 되는 이 영화,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느낀 점도 솔직하게 적어두려 합니다.부부 케미 — 밥상 차리는 요원과 타노스 주먹 형사영화 초반, 황정민이 연기하는 강력범 수사대 출신의 전직 국가 요원 박강무는 지금 가스비 절약법을 고민하는 가정주부입니다. 이 설정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무게감이 그 간극을 오히려 코미디로 바꿔버립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이 배우가 장보기 리스트를 들고 있는 장면에서도 어딘가 범상치 않은 포스가 느껴져서 혼자 ..
복수극 영화에서 주인공이 감정적으로 설득력이 없으면, 아무리 액션이 화려해도 공허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저는 를 보기 전까지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충현 감독과 전종서 배우의 재회작을 직접 넷플릭스에서 감상하고 나서, 그 공식이 꼭 맞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감각적인 비주얼과 피빛 복수극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충격은, 예상보다 훨씬 강렬했습니다.복수극의 시작, 그 감정을 어떻게 전달하는가복수극(revenge thriller)이란 단순히 악당을 처단하는 서사가 아닙니다. 여기서 복수극이란 주인공이 잃어버린 것의 무게가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장르를 의미합니다. 제가 의 오프닝을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했습니다.경호원 출신의 ..
첩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는 총도, 정보망도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는 그 명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입니다. 저는 과 을 인상 깊게 봤던 터라,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을 발견한 순간 망설임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기대 이상이었고, 동시에 몇 가지 아쉬움도 남았습니다.첩보 구도: 남북 요원이 같은 도시에서 마주쳤을 때영화는 두 개의 축으로 출발합니다. 하나는 동남아 마도르에서 마약 루트와 인신매매 조직을 추적하는 대한민국 국정원 블랙요원 조 과장, 다른 하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불법 밀입국 혐의자를 단속하러 온 북한 국가보위성 요원 박건입니다. 국가보위성이란 북한의 정치사찰 및 방첩 기관으로,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국가정보원과 검찰 기능을 동시..
스무 살 네 친구가 살인 누명을 쓰며 우정이 산산조각 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제목은 , 직역하면 '영광의 날'입니다. 저는 제목만 보고 청량한 바닷가 로드무비를 기대했는데, 30분도 지나지 않아 그 기대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찬란해야 할 스무 살이 어떻게 파국을 맞는지,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묵직했습니다.반어적 제목이 숨긴 것: 스무 살의 법적 책임과 사회의 덫'글로리데이'라는 제목은 일종의 반어법(irony)입니다. 반어법이란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정반대의 표현을 써서 메시지를 더 강렬하게 전달하는 수사 기법인데, 이 영화는 제목 자체부터 그 장치를 쓰고 있습니다. 영광의 날이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 펼쳐지는 건 억울한 누명, 어른들의 이기심, 그리고 무너져 내리는 우정입니다.영화의 ..
솔직히 저는 제이슨 스타뎀 영화라면 무조건 재밌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를 보고 나서야 그 믿음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세계 1위 킬러 비숍이 교도소에 잠입해 타깃을 제거하고, 납치된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동남아 범죄 조직 전체를 상대로 싸워나가는 이 영화는, 통쾌함과 허전함을 동시에 안겨준 묘한 작품이었습니다.배경: 세계 1위 킬러가 교도소에 들어간 이유영화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전직 킬러 비숍은 손을 씻고 조용히 살고 싶었지만, 업계는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동남아 범죄 조직의 보스 크레인이 여자친구 지나를 납치하고, 라이벌 세 명을 제거해 주면 풀어주겠다는 거래를 제안합니다. 이른바 강제 청부살인(Forced Contract Killing), 즉 협박을 ..